바둑인물

①순수한 열정이 그대의 힘 '이주영'
2018-05-14 14:48:46



#묘했던, 첫번째 만남

"한국 분이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단백질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17년 12월,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열린 'A.I용성전'에서였다.

'단백질 연구가가 이곳에는 왜?'
인공지능바둑대회가 한창 열리는 낯선 곳에 무작정 찾아온 그와의 첫 대화는 단순하지만 묘했다.

단백질 연구를 하는 사람은 씩씩하게 노트북을 켜고 각국의 A.I바둑 개발자들 사이에 앉았다.

이틀 연속 대회장에 출근 도장을 찍은 그는 '절예', '딥젠고' 개발자들 사이에 앉아 적극적이고 활기차게 다양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제가 만든 인공지능인데 한번 보실래요?"
서슴없었다.

현장을 담아야 하기에 어떤 A.I바둑이 우승을 차지할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는지 촉을 세우고 있다가도 궁금한 것이 많아 보이는 그도 물론 관찰의 대상이었다.

이틀 간 A.I바둑대회는 쉼 없이 진행됐고, 결승에서 중국 '절예'가 일본 '딥젠고'를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자가대국으로 발전한 알파고 제로의 논문을 참고해 발전시킨 A.I가 처음으로 인간의 기보를 바탕으로 발전한 A.I를 이긴 것이다.

정신 없던 A.I바둑대회 상황이 종료되고 난 뒤 그의 뒷모습을 쫓았으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억 속에 그는 그저 '호기심이 많은 단백질 연구가'였다.



▲2017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A.I용성전'에 참관을 온 이주영교수(왼쪽 파란색 셔츠).



#뜻밖의 곳, 두번째 만남

4개월 뒤 단백질 연구가는 뜻밖의 곳에서 나타났다. 중국 푸저우에서 열리는 '베리지노믹스컵 월드AI바둑대회' 출전 명단에서였다. 그가 '바둑이(BADUKi)'라는 이름의 A.I바둑을 들고 나타났다.

알파고 이후에 너도나도 자원과 재원을 투입하며 A.I바둑을 쏟아내고 있는데 바둑 강국이라는 한국은 지금까지 1인 기업이 만든 '돌바람'의 발전만 먼 발치에서 응원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두개의 A.I바둑이 출전한다니 반갑구만, 반가웠다.

명함 수첩을 뒤적여 보니 그제서야 단백질 연구가의 이름이 또렷이 보인다.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이주영 교수.

"교수님, 중국에서 열리는 A.I대회에 출전하시더라고요.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대회까지 있으시더라고요? 긴 여정 잘 부탁 드립니다."

"제가 잘 부탁 드려야죠. 대회에 처음 나가는 것이라서 정신도 없고, 떨리기도 합니다. 목표는 1승입니다."



 

왜 단백질을 연구하는 그가 그 곳에 홀연히 나타났는지 4개월이 지난 뒤에야 궁금증이 풀렸다. 한 뼘 정도 그와 가까워진 뒤 알게 됐는데, 당시 그의 열정은 샘 솟는 시기였다.

2017년 10월, 한국연구재단(NRF. 국가대표 연구관리 전문기관)의 전략과제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였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마감 이틀 전에 'AI.바둑 연구를 통해 단백질과 신물질 연구 과제에 다가서겠다'는 제안서를 냈다.

제안서는 이틀 동안 휘리릭 만들어졌지만 그는 오래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알파고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신약 개발을 통한 인류 기여가 궁극적인 목표다'라는 내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논문을 50번이나 정독을 했다. 거꾸로 인공지능에 도전해 보자는 열정이 생겼다. 열정 또한 그의 전문 분야였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그리고 12월 초 연구재단은 그에게 5년간의 'A.I바둑 연구'에 대한 지원을 허락했다. 한시라도 빨리 연구에 돌입하고 싶었던 그에게 이틀 뒤에 도쿄에서 열리는 'AI용성전'은 세계 A.I바둑의 현주소를 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열정적인, 세번째 만남

중국 푸저우로 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해 단백질 연구가, 아니 이주영 교수를 만났다.

짧은 인사 뒤 비행기를 타고 2시간 정도 후에 샤먼에 도착했고, 쉴 틈 없이 미니버스에 올랐다. 최종 목적지는 샤먼에서 4시간 가량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푸저우'다.

허리 한번 펴기 힘든 미니 버스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또깍또깍 타자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이주영 교수의 손가락은 쉴 틈이 없었다.


잠깐의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오청원배에 출전하는 여자기사들도 '바둑이'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용했던 버스 안에서 갑자기 바둑공부가 시작됐다. 그 동안 '바둑이' 테스트를 위해 프로기사와 대국했던 기보를 보여주며 '바둑이' 수에 대해서 물어보고 또 물어본다. 알파고를 시작으로 인공지능바둑에 대한 정보도 아낌없이 전달한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선수들은 귀가 쫑긋하다.

"나중에 저희가 '바둑이'와 대국도 해볼 수 있어요?"

"그럼요. 대 환영입니다. 대국도 할 수 있고, 복기도 할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바둑이'를 꼭 이겨주세요. 그래야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교수는 A.I용성전 참관을 한 뒤 가치망과 정책망,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망 등을 갖춘 첫 버전을 12월 말에 내놓았다. 그리고 올해 2월에는 자체 대국 체제에 돌입했다. 그리고 3월부터 알파고 제로 방식(사람의 기보를 입력하지 않고 스스로 대국을 해 발전하는 알고리즘)으로 전환했고 성장에 가속이 붙었다.



▲흔들리는 차안에서 막간 바둑공부에 빠진 프로기사들과 이주영교수.


▲6박7일이라는 긴 일정 동안 함께한 한국 원정대. (왼쪽부터) 한국기원 유창혁 사무총장, 김채영, 오유진, 오정아, 최정, '돌바람' 개발자 임재범대표, 이주영 교수.


'바둑이'는 지금까지 프로기사와 대국해 4승5패를 기록하고 있다.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프로기사 이성재는 "1월초에 정선이었는데, 3월부터는 나보다 세졌다. 성장 속도가 무서울 정도"라고 칭찬했다.

프로기사 이성재와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바둑이' 개발이 진전을 보이자 한국기원 프로기사에게서 진단을 받고자 한국기원에 몇 번의 연락을 했다.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고등과학원 원장이 바둑고수인 이윤희 포커프로를, 이윤희 프로는 프로기사 이성재를 '바둑이'에게 소개해줬다.

4개월만에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 '바둑이'의 첫 시험대는 '베리지노믹스컵 월드AI바둑대회'다. 아쉽게도 일정 관계상 대진추첨을 못한 그에게 좌절의 대진이 전해졌다. 예선전 1국이 하필 중국 '절예'다.

"'절예'랑 둬요? 스위스리그 특성상 1국에서 지고 나면 강자를 만나기 힘든데 ‘절예’랑 둘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잘됐네요!"



▲바둑 인공지능 ‘바둑이’ 개발자인 이주영(오른쪽) 교수와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이성재9단이 전용 GPU(그래픽 처리 장치)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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