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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를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당시 월간 바둑 기자였던 나는 우연한 전화 한통을 받았다. 스스로를 이색 바둑인이라고 소개하던 그, 현명덕 씨.

정말 그가 말한 것처럼 세상에 알릴 만한 바둑인인지 알아보려고 찾은 곳은 인천 주안3동 성당. 그런데 웬 성당? 바둑광을 만나는 데 웬 뚱딴지 같이 성당으로 찾아가야 했단 말인가.

하지만 기자는 제대로 찾았고, 그가 정말 이색 바둑인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당시 월간 바둑(96년 4월호)에 기자가 썼던 기사를 읽어보면 이해하시리라.

갓난아기 때 펄펄 끊는 솥에 빠져 사선을 넘나들다 살아난 현명덕 씨. 그 사건으로 하반신 소아마비자가 된 그는 휠체어에 평생을 몸을 싣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그것을 연으로 바둑을 배우고, 인생을 배우고, 사랑하는 아내를 얻었으니, 운명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그가 청년이 되던 어느 해 하숙집인 그의 집에 바둑을 9급쯤 두는 하숙생이 들어온 것이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신체가 부자유스러워 거의 매일 지루하게 보내던 그에게 바둑이 그를 매료시키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이내 그 하숙생을 물리치는 경지(?)에 올랐다. 그때부터 그는 바둑이 곧 인생이 돼 버렸다.

그에게 바둑을 알게 해 준 하숙생은 떠나갔건만 오히려 그의 바둑에 대한 사랑은 점점 깊어만 갔다. 상대가 없으면 왼손과 오른손이 대국 상대로 충분했다. 신문에 가끔 나오는 사활 문제를 스크랩하는 습관이 생긴 것도 그때부터였다.

"20대 중반으로 기억나니까 바둑을 배운 지 10년이 넘어서야 월간 바둑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독자들을 위한 펜팔 란이 있었는데, 저에겐 더없이 값진 코너였습니다. 그 펜팔 란을 통해 ㅂ씨를 알게 되어 한 7년 동안 무려 100여 국이 넘는 전화대국을 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는 ㅂ씨 덕분에 ㅎ씨와 ㄱ씨를 전화로 소개받아 서신 대국을 병행하게 됐다. 엽서에 한수씩 적어 보내는 방식으로 1년이 넘도록 가진 서신 대국은 그의 뜻과는 달리 어느날 갑자기 소식이 끊겨지는 바람에 중단되고 말았다.

지금은 주로 통신대국을 즐긴다는 그는 '바둑이 세상을 보는 창문 역할을 해 준다'며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24시간을 두어도 지루한 줄을 모른다고 한다.

어느덧 1급에 오른 현명덕 씨. 그는 89년 어렵게 결혼, 독실한 가톨릭 신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그는 복음전파를 위해 96년 마침내 바둑모임 천석회를 만든다.

"하늘(天)에 뜬 돌(石)이란 뜻의 천석회(회장 차용철)엔 신자가 아니더라도 가입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바둑을 통해 사람들에게 성당이 부드러운 곳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주말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 지도도 하고 있죠."

그래서 그런지 창립한 지 두돌이 채 안된 천석회는 지금 80명이 넘는 많은 회원을 자랑한다. 그중 비신자로 20명을 웃돈다니 현명덕 씨의 소망은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다.

96년 4월호/글· 최진용

그때 연을 맺은 현명덕 씨를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만난다.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천석회로 바둑을 두러가다 보니 저절로 그를 만날 밖에. 천석회가 만들어질 때 총무였던 그는 3년 뒤인 99년에 제3회 회장으로 추대 받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맡았으니 햇수로 어느새 6년째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천석회가 지금까지 크게 흔들리지 않은 데는 바로 회장 현명덕 씨의 지속적인 관심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이후 장애인바둑협회 회장 자리에도 올라 좀더 많은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특히 올 2월에는 남구장애인 종합복지관 건립 예정지(임시 건물)에서 무료바둑강좌를 열어 '바둑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수요일반과 목요일반, 주2회 강의를 하며 수강생은 현재 70명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3월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아빠랑 편먹고 바둑을 둬도 좋을 듯 싶어요."

수강을 하고 있는 한 예비 어머니가 들려준 얘기다. 매주 수요일에는 오후 4시부터, 목요일에는 낮 1시 30분부터 서너시간 강의를 한다. 수강생이 유치부를 포함해 어느새 70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많은 편인데, 아빠들도 조금 있다.

▲ 현명덕 선생님으로부터 강의를 듣고 난 주부와 어린이들이 진지하게 문제를 풀고 있다. 강의는 수요일에 4시에 한 타임 갖고, 목요일에 1시30분과 4시 두 타임으로 나눠 한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그를 지켜보면 과연 그가 장애인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오프라인 모임으로 출발한 천석회는 2002년부터 타이젬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며 온-오프를 연결하는 더욱 실속 있는 천석회로 거듭났다.

오프라인 회원이 거의 온라인 회원이 돼 타이젬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오프라인대회를 소화하기 힘든 회원에게는 온라인 천석회가 더 없이 고맙다. 상대방하고 시간만 맞으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얼마든지 대국할 수 있지 않은가.

이처럼 온-오프 활동을 특별히 구분 지을 이유가 없는 천석회로서는 일반적인 온라인 동호회처럼 번개 모임을 일부러 갖을 필요가 없다. 또한 천주교 내에 둥지를 튼 천석회이지만 바둑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종교에 불문하고 환영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떠신가. 여러분도 하늘(天)에 돌(石)을 놓는다는 천석(天石)회에 노크해 보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