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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기원1편-정치게시판에 글있슴
작성자 줄리메컵 게시일 2016-10-11 조 회 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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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글꼴의 기원






목차
1. 창제 한글꼴에 대한 의문
2. 한글꼴의 기원설들
3. 고전 기원설
4. 파스파 문자 기원설
5. 가림토 문자 기원설
6. 신대문자 기원설
7. 히브리 문자 모방설
8. 한글은 다듬고 변할 수 있는 문자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왜 만들었을까? 초성의 구조적 원리까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정작 당시의 책들에 실린 한자의 유려한 붓글씨체에 비해 한글은 본떴다는 발성구조와도 너무 거리가 먼 딱딱한 도형이다. 옛 글자의 형태를 모방했다고 『세종실록』에도 밝혀져 있는 한글의 유래에 대한 의문은 문자 디자이너로서 세종대왕의 생각을 더듬는 일이다.

1. 창제 한글꼴에 대한 의문

기본적으로 문자는 음성 언어(말)를 시각화하는 2차적 언어다. 즉, 문자는 형태라는 요소와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당시 훈민정음에 밝힌 바, 백성 중에 말을 할 줄 아는 누구도 일상에서 타인과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자는 정보를 기록하고 멀리 있는 사람에게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왜 그런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정작 글자에 필요한 필법과 전형적인 필체는 왜 훈민정음에 포함시키지 않은 걸까? 단지 기본 골격뿐 아니라 글꼴이라는 외형적 요소의 가변성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한글 창제 연구진의 이해 부족 때문이었을까? 한글 창제 후 세종대왕은 이를 적용한 문헌들을 몇 가지 출간했다. 당연히 활자와 목판을 이용한 인쇄본이다. 목판이든 활자든 인쇄용 글자를 판에 새기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의 손으로 글자를 써야 한다. 『훈민정음』과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등의 본문 글자는 손으로 자연스럽게 쓴 것이 아니라 기하학적인 도형에 가깝다. 이 책들 안에 있는 한자들이 모두 붓으로 쓴 자연스러운 필기체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창제 당시 한글은 필기용이라기보다 인쇄용 글자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적어도 기하학적 글꼴이 조형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겨지기 어려운 시대였음을 고려한다면, 함께 인쇄된 한자처럼 우아한 필기체 형태의 글자로 개발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당시 글자가 말을 담을 완벽한 그릇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겠지만, 단순히 어리석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한 것이 창제의 동기라는 데는 다소 의구심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훈민정음’

‘훈민정음’

ⓒ 송성재


2. 한글꼴의 기원설들

미국의 디자이너 허브 루발린(herbert f. lubalin)은 모방의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아이디어는 일상 속에 편재하는 것이지 하늘에서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는 보다 많은 것을 관찰하고 머릿속에 그것을 담아두는 데서 시작된다." 거북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무렵, 이순신에 의해 고안된 철갑선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문헌에는 그보다 200여 년 가까이나 거슬러 올라간 이조 초기에도 거북선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인과 관계가 어떠하든 적어도 거북선이 100% 이순신 장군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다.

한글 역시 세종대왕이 문살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떠오른 영감에 힘입어 만든 것은 아니다. 긴 세월을 지나면서 다듬어지고 변해가는 다른 모든 언어와 문자의 발전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기간에 한 사람의 발의와 결단, 그리고 몇 사람의 집념어린 노력에 의해 완벽에 가까운 기능을 가진 문자가 탄생했다는 것이 위대한 것이지 그것이 한 천재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는 신화를 우리가 추앙할 필요는 없다. 많은 학자들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있는, 한글이 본떠 만들었다는 고전(古篆)을 한자의 해서체(楷書)처럼 붓의 힘에 따라 획의 굵기가 바뀌는 서체 모양이 아니라 지금의 고딕체 모양을 가진 전서(篆書)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굳이 한 가지 한자 스타일의 모양만을 언급했을 리가 없다. 만들어진 글자는 자연스럽게 붓으로 쓰게 될 것이고 내내 전자(篆字)의 마무리 형태로 일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획 끝의 모양 따위보다는 직선적인 전체 구조를 의미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한자의 형태에서 가져오지 않았을 여지를 남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 이전의 글자는 모두 한자를 빌려 쓴 것들이다. 신라 시대에는 우리말을 모두 한자로 적었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한자말을 많이 섞으면서 토씨 같은 것만을 한자로 덧붙여 표기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처럼 토씨나 어미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한자만으로 우리말을 다 적을 수 없었다.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적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처음 훈민정음의 각 낱글자 이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가령 ㄱ, ㅅ, ㄷ이 기윽, 시읏, 디읃으로 표기되었어야 하지만 이와 같은 소리를 가진 한자를 찾을 수 없었고, 우리말에서도 윽, 읏, 읃은 별다른 뜻을 가지지 못해 그 뜻에 해당하는 한자를 가져다 댈 수도 없어 결국 ㄱ은 기역(役)으로 ㅅ은 시옷(衣, 옷을 의미하는 한자)로 ㄷ은 디귿(末, 끝을 의미하는 한자)로 변통해 적었다. 한자의 음도 제각각이어서 『동국정운』 같은 방대한 작업을 통해 발음을 정리했다.

한자로 적기 어려운 우리말이 갈 수 있는 길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자가 아닌 다른 글자를 빌려 쓰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이다. 조선 시대 당시 중국 문화에 젖은 지식인들이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 글자를 빌려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남은 방법은 새 글자를 만드는 것뿐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왜 하필이면 그때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기고, 이는 최만리 등이 상소문을 통해 주장한 내용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은 처음 글자를 만들 때 어떤 글자의 모양을 참고했을까? 『훈민정음 해례본』의 설명대로 발음할 때의 입모양을 처음부터 그리면서 글자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단지 입 모양만 연상했다면 그렇게 간단하고 기하학적인 패턴의 파생보다는 오히려 곡선적인 글자 모양이 만들어지지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어떤 글자의 모델에 입 모양을 결합하는 논리로 글자를 설명한 것은 아닐까? 회자되고 있는 몇 가지 한글 글꼴의 원형에 대한 가설은 단순히 의구심에서가 아니라 좀 더 시야를 넓혀 우리글의 위상과 특성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고전 기원설

훈민정음의 기원에 대한 논란은 오래 전부터 여러 가지로 제기되어 왔다. 이렇게 설이 구구했던 이유는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오기 전까지 훈민정음의 기원에 대한 기록이라고는 『세종실록』에 '자방고전(字倣古篆 : 글자는 고전을 본떴다)'이라는 한 구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 1〉 전서체

〈그림 1〉 전서체


'고전'은 글자 그대로 옛날 한자의 전서체로 보는 고전기원설(古篆起源說)을 낳았다. 이것은 단지 '전서체의 각이 진 모양(角形)'을 본떴다는 글자의 형태에 국한시킨 견해다. 그다음으로 등장한 것이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자를 닮았다는 '범자(梵字) 기원설'이다. 조선 성종 때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초·종성 8자, 중성 12자의 글자 모양은 범자에 기대어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 후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우리나라 언문글자의 모양은 모두 범자를 본받았다"고 했다.


〈그림 2〉 범자

〈그림 2〉 범자


4. 파스파 문자 기원설

파스파 문자는 훈민정음보다 약 170년 앞선 원나라 세조 때 제정된 문자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파스파 문자 기원설을 주장한다. "세종께서 한글을 처음 만드실 때 명나라의 학사 황찬이 귀양살이를 하는지라 성삼문 등을 보내 질문하게 했다. 이때가 원이 망한 지 겨우 79년이 지난 때로, 황찬이 우리에게 전한 것은 다름 아닌 몽고글자에 대한 지식이었다." 유희의 『언문지』에서도 한글의 기원이라고 언급되는 파스파 문자는 세종 당시 이미 잘 알려진 문자라는 점, 자형이 정사각형이고 특히 'ㄱ ㄷ ㅂ ㅅ' 등의 글자가 비슷한 점, 문자의 구성 원리와 운용이 유사하다는 점 때문에 이러한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림 3〉 몽고 파스파 문자

〈그림 3〉 몽고 파스파 문자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이후에 각종 기원설이 힘을 잃게 되었지만 이후에도 한글의 기원설은 이따금씩 나오고 있다.

5. 가림토 문자 기원설

그 중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것이 1983년 제기된 '가림토 문자설'이다. 가림토 문자 기원설에 따르면, 고려 말기의 학자 이암이 쓴 『단군세기』에 3세 단군 가륵이 재위 2년(서기전 2181년), 삼랑 을보륵에게 명해 환웅 천황시절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짐승가죽에 문자화했던 옛 기록을 정리해 정음 38자의 가림토 문자를 만들었는데, 가림토 문자 38자 속에는 한글 28자가 거의 다 원형 그대로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림 4〉 가림토 문자

〈그림 4〉 가림토 문자


가림토 문자를 사용하던 여진이나 거란 몽고족은 사실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고 한다. 시베리아에 거주하던 쥬신족의 일부도 가림토 문자를 사용했는데 이들이 베링해를 거쳐 아메리카로 진출해 아메리카 인디언의 기원이 되었고, 놀라운 것은 이들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적 중에서 가림토 문자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자는 일반적으로 그림문자와 상형문자의 단계를 거쳐 표음문자로 발전하는 것이 원칙인데, 수메르 상형문자와 이집트 상형문자 정도가 존재할 무렵인 bc 2181년에 음소문자가 존재했다는 것은 문자학의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림토 문자에 대한 주장은 근거부터 국어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911년 계연수가 편찬한『한단고기』에 들어 있는 가림토문자의 출전 『단군세기』가 고려 시대의 원본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도 이 주장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6. 신대문자 기원설

일본 미에 현에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700여 년 전쯤에 세워진 일본 최초의 신궁이자 모든 신사의 본종인 '이세신궁'이 있다. 이곳에는 외부에 잘 공개하지 않는 보물로 '신대문자(아히루 문자)'라고 부르는 문자가 새겨진 거울과 문헌이 있다. 일본에 한자가 전파되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이 문자의 생김새가 한글과 닮았다. 때문에 과거 일본은 한글이 일본의 신대문자를 베낀 것에 불과하며, 이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여 신대문자의 정체를 파헤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전면 중단하고 연구 결과를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자신들에게 절대로 불리한 역사적 사실이 밝혀졌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림 5〉 일본 신대문자

〈그림 5〉 일본 신대문자
만족 굿~ 축하 당황 음흉 슬퍼 한숨 버럭 경고 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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