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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첨지.
작성자
파계승21
게시일
2003-06-28
조 회
474
첨 부
없음.
내 용
멍첨지의 ‘돈’과 ‘똥’
멍첨지. 속담에서 나온 말이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다.” 우스개가 아니다. 첨지는 조선시대 중추부의 정삼품 벼슬이다. 민중의 해학이 날카롭게 번득인다. 돈으로 불가능한 게 없다는 ‘통찰’이다. 하물며 자본주의 사회 아닌가. 보라. 또렷한 진실조차 언죽번죽 뒤집는다. 사회적 약자는 노조가 아니라 기업이란다. 소가 웃을 일이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공동성명’이다. 모든 신문 1면을 사 버젓이 공언했다. ‘말살에 쇠살’은 더 있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더는 투자를 않겠단다. 돈깨나 있어서일까. 배짱이다. 고용을 줄인다고 협박이다. 공장을 나라 밖으로 옮기겠다고 위협한다.
생게망게한 일은 꼬리를 문다. 경제 5단체의 ‘오적’다운 망발을 비판해야 마땅한 언론은 되레 부채질이다. 1면에 그 협박을 대서특필한다. 사설로 받쳐준다. 그것도 모자라서일까. 기자회견에 나선 부자들의 심경까지 헤아린다. 기사에 서슴없이 추측을 담는다. “표정에서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심사를 억누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뿐인가. 노조를 ‘과격’으로 덧칠하며 국내에 들어온 외국 기업인들을 부추긴다. 매국적 나팔수 짓에 부끄러움도 잊었다. 부자들과 부자신문의 북 치고 장구 치는 풍경은 역겨움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멍첨지’의 깜냥이 뚝뚝 묻어난다.
기실 그들의 거드름은 뿌리깊다. 옹근 25년 전이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던 유신체제의 행사장에서 분연히 여성 노동자들이 일어섰다. 피맺힌 절규를 쏟았다.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민주노조를 세우려는 여성들에게 똥을 끼얹고 얼굴에 문지른 동일방직 멍첨지의 만행을 고발하는 몸부림이었다. 언론이 모르쇠했기 때문이다. 생방송은 즉각 중단됐다. 공권력은 쏜살처럼 돌진했다. 머리채를 낚아채고 발길질로 짓밟았다. 그 경찰은 젊은 여성 노동자의 속옷에 똥을 집어넣는 야만이 벌어질 때 무엇을 했을까. 옆에 있었다. “도와달라”고 울부짖자 살천스레 내뱉었다. 육두문자 욕설이었다.
그것이 이른바 ‘공권력’의 정체였다. 하여, 경제 5단체와 그 앞잡이 언론에 묻는다. 오늘 그 공권력이 그리운가. 노동 현장에 다시 똥이, 백골단의 주먹이, 식칼이, 최루탄이 날뛰어야 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애면글면 열어온 민주주의의 후퇴다. 멍첨지들이 아무리 언구럭부려도 노동자들은 흔들림 없이 싸워왔다. 오늘 노동자들에게 감히 똥을 먹일 멍첨지가 없는 까닭도 여기 있다. 정치적 민주화로 노동자들도 시민권을 얻은 듯 보인다. 하지만 냉철할 일이다. 과연 본질마저 바뀌었을까. ‘투자 거부’로 협박하며 노동운동 탄압을 공권력에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저들을 보라.
그렇다. 똥 대신 돈으로 겉만 바뀌었을 뿐이다. 노동자에 더 많은 돈을 먹이고 ‘복리후생’으로 어루꾄다. 반면 고분고분하지 않은 노동자에겐 똥보다 더 비열한 ‘정리해고’로 훌닦는다. 그 결과다. 바로 언론 노동자를 비롯해 상당수 노동자들이 시나브로 길들여지고 있다. 단결이 생명인 노동자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어근버근 갈라진다. 심지어 국내 최대 재벌은 당근과 채찍으로 노조 결성 자체를 가리튼다. 노동자들을 대등한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통제 야욕에 눈먼 저들에게 돈과 똥은 동전의 양면이다. 앞뒷면 어디에도 노동자의 인권은 없다. 노동자의 분신과 음독자살이 줄 잇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부자신문들은 지금이 ‘노조시대’란다. 노조 때문에 ‘망국 위기’라고 가살피운다. 여론조작이다.
곳곳에 멍첨지가 똬리 튼 공화국의 내일은 어둡다. 나라와 민중을 대놓고 협박하는 경제 5단체를 보라. 그 부라퀴들을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로 여론몰이하는 ‘파수견’들을 보라. 언제까지 대한민국이 멍첨지들의 공화국이어야 하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오늘 무엇을 해야 할까. 한 손에 돈, 다른 손에 ‘똥’을 든 저 멍첨지들 앞에서, 인내는 결코 미덕이 아니다. - 손석춘 논설위원 s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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